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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7> 사라진 하나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기사입력 2023/02/26 [08:01]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7> 사라진 하나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입력 : 2023/02/2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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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2회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문학전집-[2021-중편소설-최우수상]- 김효정 - '하얀모래'- 젖가슴 1     ©장애인인식개선신문

 

<7> 사라진 하나

 

 

 

우린 세상을 바꾸려 하였소.

대사헌 이이첨의 국문에 죄인이 답하였다.

허무맹랑한 소리는 치우고, 죄를 행한 연유를 소상히 고하라.

대답하는 죄인은 영의정을 지낸 박순의 서자인 박응서라는 자였다. 사헌부 추국장에 꿇어앉은 죄인은 그를 포함해 여섯이었다. 박응서가 우두머리인 듯했다.

죄인들은 조령에서 매복해 있다가 한양으로 가는 은 수레를 털고 장수를 살해했다.

거사를 일으킬 자금이 필요하여 은 장수의 물건을 강탈하였소. 장수의 목숨을 앗는 것은 계획에 없었으나 일이 뒤틀려 그리 되었소만.

추국장의 화롯불이 죄인의 얼굴을 밝혔다. 안광이 총명했고 젊은 나이였다.

네 입에서 나온 거사라는 말이 대단히 상서롭지 못하다.

임금이 친히 국문의 현장에 자리한 곳에서 이이첨이 같은 내용의 국문을 다시 행하였다. 임금과 더불어, 당파를 막론하고 입궐해 있던 모든 신들이 모였다.

네놈이 말하는 거사가 무엇이냐.

임금이 물었다.

거사는 임금이 현장에 자리하게 만든 언어였다. 그를 대사헌 이이첨이 강녕전으로 전한 것이다. 언어가 임금의 성미를 건드려 야밤의 친국이 시작되었다.

서얼차대를 없애는 것이오. 우리는 용상에 직행하여 주상을 알현하려 하였소.

임금 앞에 선 죄인의 말이 가벼워 장평 한 사람이 크게 성을 내었다.

정녕 그것을 거사라 칭할 수 있는가.

임금은 장평의 고성에 개의치 않고 반문하였다.

이이첨이 한 차례 기침 소리를 내었다. 장평은 알았다는 듯 몸을 낮추어 뒤로 일 보 물러섰다. 임금의 흐름을 끊지 마라는 뜻이었다.

네가 보고자 한 과인이 왔으니 전할 뜻이 있다면 남김없이 전하도록 하라. 장부가 죽음이 두려워 혀에 거짓을 물리는가.

서얼차대는 명과 왜 어느 곳에도 없는…… 오직 조선만의 썩은 법도요.

눈매가 날카로운 서자는 군왕의 면전에서 주눅들지 않고 소리를 높였다.

등용의 길을 막으면서 인재가 없음을 한탄하니, 남으로 향하며 수레를 북으로 끄는 것과 다름없다는 문장을 주상도 익히 읽은 것으로 아오. 이백 년의 악습을 폐하려는 것을 어찌 거사라 하지 못하겠소.

네놈이 말하는 거사가 고작 그것이냐. 더 전할 뜻이 없더냐.

탈취한 은으로 군자금을 마련하여 칼을 들어서라도 용상에 들려 하였소만.

서자의 그 말에 기어코 몇몇 신들이 고성을 질렀다. 임금의 몇 발짝 옆에 서 있던 이이첨은 동요하지 않았다. 피어오른 불씨에, 임금의 안광이 한 차례 번뜩였다.

하나를 베어라.

관원이 여섯 중 하나를 베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숨 하나가 뚝 지는 소리와 함께 추국장의 모든 소리가 죽어버렸다. 화롯불의 토막 타는 소리만이 선명해졌다.

하나를 더, 베어라.

― …….

죄인 하나가 또 베어졌다.

국문은 차일에 다시 이어가겠다. 달을 거울삼아…… 죄인은 제 죄를 온이 비추고, 양사 관원은 진상을 밝히는 밤을 보내야 할 것이다.

임금이 퇴장하였다.

영의정 한음이 신들을 대리하여 임금을 배웅하였다. 임금이 몇 마디 말로 현장을 쓸고 자리를 뜨자, 사헌부 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남은 국문을 이어갔다.

이이첨은 박응서만을 추국장에 남기고 남은 죄인 셋을 하옥시켰다. 하나씩 불러 죄를 물을 요량으로 보였다. 물음은 아마 박응서에게 집중될 것이었다.

신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모인 자들이 떠나고 죄인도 하나만 남게 되자, 나는 추국장이 마당으로 보이고 국문이 한바탕 극처럼 여겨졌다. 더 살피고자 했으나 이이첨이 나를 의식하여 극의 흐름을 비틀리라 생각되었다.

사실을 추적하기 위해 내가 사라져야 했다. 나는 현장을 급히 살펴, 믿을 수 있는 얼굴 몇을 확인하고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

 

 

사헌부 지평 홍제익은 답답한 사람으로 통했다.

말수가 적고 늘 안색이 어둡던 그는 나와 같았으나 또 나와 달랐다. 내가 농을 쳐서 주변을 물리는 사람이라면, 그는 벼슬아치들이 흔히 일컫는 융통성이란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여 주변에 늘 사람이 없는 외골수였다.

일찍이 이이첨의 눈 밖에 난 그였기에 더더욱 눈으로부터 자유로울 거라 여겼다.

 

……말 적은 선비는 외려 말의 부자일 터. 오성은 쉬이 농으로 말을 버려 늘그막에 가난하니, 넉넉한 선비는 입안의 고를 열어 말을 빌려줌이 어떠한가…….

 

나는 탄을 통하여 그의 집에 글을 보내었고, 선비는 말을 빌려주려 이틀 뒤 제 발로 나를 찾았다.

나를 본 후에도 곧바로 입을 열지 않고 한참을 안색을 어둡게 하고 앉아 있는 것이 자못 답답히 여겨지다가도 퍽 믿음이 가 그를 기다려주었다.

부원군께서는 제 전언에 어떤 사견도 없을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차를 주고받는 순을 두 차례 이은 뒤에 이윽고 홍제익이 입을 열었다.

바로 그 말로 내 먼저 말꼬를 틀까 하였건만.

나는 훑던 찻잔을 내려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자리를 뜬 후의 사실만을 듣고자 함이니, 알려주게.

홍제익이 추국장의 후문을 열었다.

그는 새벽이 되어서까지 이이첨이 추국장을 지켰음을 알렸다. 또한 그의 물음에 답하는 박응서에게서 더 이상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나의 짐작과 같았다. 무려 임금을 알현한 서자가 굳이 더 뱉을 말을 남겨둘 리가 없었다.

대사헌께서는 그 뒤 박응서를 물리고, 하옥되어 있던 죄인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불러 다시 국문을 이어가셨습니다.

다른 죄인의 대답 중 특히 기록될 것이 있던가.

딱 한 사람이 꺼낸 말이긴 하나…… 죄인이 여섯이 아닌 일곱이라 하였습니다.

홍제익이 놀라운 말을 전했다. 나는 내색 않고 이어 물었다.

살피건대, 고형으로 지어진 말이던가. 알아서 나온 말이던가.

대사헌께서 그날 죄인 모두에게 고형을 가하셨으나, 그자의 말이 그릇되진 않아보였습니다. 억지로 상황을 어지럽히려는 수는 아닌 듯했습니다.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이며, 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사라진 하나는 같은 서출로, 전하의 명으로 그날 처음 목이 베어진 이의 친형이라 들었습니다.

홍제익은 죄인이 여기까지 고하고 실신하였다고 전했다.

대사헌께서는 국문을 이어가고자 하셨으나 이내 날이 밝았고, 실신한 죄인의 상태도 좋지 않아 장을 파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겪은 사건의 전부입니다.

대사헌이 그 다음날부터는 추국장에 사람을 줄인 건가.

나의 물음에 홍제익이 침묵하였으나 그의 긍정을 은연중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이첨도 사라진 하나로 인해, 일을 조용히 진행해야 함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여 그는 장령 아래로는 걸러내고 사헌부의 심복들만을 꾸려 국문을 이어갔을 것이다.

…… 사라진 이의 아우, 죽은 죄인의 이름을 들었던가.

박가 치인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홍제익을 자리에서 물렸다.

감사를 표할 일은 없어야 했다. 그를 사실만을 전한 선비로 남겨두었다. 하여 그에게 별다른 말은 치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치러야 하는 일이 따로 있었다.

나는 이 소동이 처음부터 이이첨이 벌이는 극이라 생각되었다. 마당에서 사라진 하나가 이이첨에게 묘수인지 혹은 물음인지 가려야 했다. 뒷날 추국장의 사람을 줄인 것으로 보아 그에게 또한 물음인 것으로 봄이 마땅하나, 어찌 되었건 내가 행할 것은 매한가지의 일이었다. 추적을 해야 했다.

나는 탄에게 불가한 명을 주었고, 탄은 곧장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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