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ㅣ 최봉혁 칼럼니스트 ㅣ 장애인인식개선신문
키오스크는 현대 사회의 일상 속 깊이 들어와 있다. 무인주문기, 발권기, 접수기 등 다양한 형태로 공공성과 상업성을 넘나들며 자리 잡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키오스크 보급 대수는 53만 대를 넘어섰다. 그 편리함은 환영할 만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같은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지는 짚어봐야 한다. 특히 장애인과 고령층에게 키오스크는 여전히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정보 접근의 물리적 한계, 복잡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제한적인 지원 기능은 '디지털 소외'라는 이름의 또 다른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 디지털 격차 앞에 놓인 장애인디지털 접근성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와 직결된다. 음식을 주문하거나 민원을 접수하는 행위는 일상적 권리다. 하지만 키오스크는 자칫 이 권리를 제한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화면이 너무 높거나, 글씨가 작고 음성 안내가 없다면 누군가에겐 그저 ‘닫힌 기술’일 뿐이다.
이를 인식한 정부는 2023년 1월부터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했다. 50㎡ 이상 사업장에 설치되는 모든 신규 키오스크는 배리어프리 기능을 갖춰야 하며, 기존 기기도 유예기간 내 개선이 의무화됐다. 기술이 모두를 위한 것이 되기 위한 첫 걸음이다.
하지만 법이 있다고 현실이 자동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사용자 맞춤형 기술은 제한적이고, 키오스크의 다양성은 낮다. 이 문제의 중심에는 ‘기술 공급의 독점 구조’가 있다.
◆ 기술도 경쟁해야 포용성을 만든다과거 한국에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소수 업체가 주도해왔다. 표준화되지 않은 인증 시스템과 제한된 개발 자원은 기술 다양성을 제한했고, 획일화된 제품 설계는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양한 기술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배리어프리 시장에 참여하면서 기술 경쟁이 촉진되고 있다.
국내 주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제작업체
이외에도 수많은 기술 기업이 저자세 모드, 저시력자 전용 UI, 음성 주문 기능, 외국어 및 수어 번역 기능 등을 탑재한 키오스크를 개발하며 접근성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확산은 경쟁에서 비롯된다. 다양성은 시장 참여자 수에 비례하며, 다양한 장애 환경과 사용 조건에 적합한 솔루션은 경쟁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 미국의 사례에서 배우는 경쟁과 표준화미국은 ADA(장애인법)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규제와 경쟁 기반의 기술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다수의 기술기업이 각기 다른 유형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개발하며, 지방정부와 공공기관은 ‘접근성 인증제도’를 통해 기술을 평가하고 조달한다. ITIF(정보기술혁신재단)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경쟁 기반의 기술 혁신은 디지털 포용성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가장 실효성 있는 전략”으로 평가됐다. 우리도 기술 표준화와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고, 조달 시장을 확대하며 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장애인 인식 개선, ESG 경영의 본질을 말하다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ESG 경영, 특히 ‘S(Social)’의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다. 하나시스가 키오스크 100대를 기부하고 유지보수를 지원하며, 한국장애인정보화협회가 교육을 맡고,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구조는 민·관·사 협력의 전형적 모델이다. 이것이 진정한 ESG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기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가 중요하다. 장애인은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구조적 배제의 피해자다. 우리가 기술을 설계할 때 그들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기본 사용자’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인식 개선의 출발점이다. 기술은 ‘동정’이 아닌 ‘공정’을 구현해야 한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사회 통합의 시작점이 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와 기술뿐만 아니라 사용자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동반돼야 한다.
◆ 모두를 위한 기술, 모두가 만드는 미래디지털 포용은 선언이 아닌 실행이다. 그리고 실행에는 구조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기술 공급자의 다양화, 사용자 맞춤형 기능 개발, 공공 조달 시장의 개방, 기업의 사회책임 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고령자와 젊은 세대가 함께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모습은 단순한 기술 활용이 아닌 ‘사회적 신뢰’의 표현이다. 기술은 사람을 닮아야 하고, 사람은 누구든 존중받아야 한다. 경쟁은 그 존중을 실현하는 도구다. 포용의 사회는 공정한 기술 생태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지금, 그 방향으로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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