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 칼럼니스트) 저음의 울림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화가의 이야기 한 폭의 그림이 말할 때가 있다. 말과 소리의 세상에서 멀어진 사람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색감과 형상이, 때론 천 마디 말보다 깊은 울림을 전한다. 청각언어장애를 안고 살아가며 50년을 넘게 붓을 놓지 않은 화가 최일권 화백의 이야기가 그렇다. 세상과의 소통, 그림으로 시작하다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일권은 돌도 지나기 전 심한 고열로 청각언어장애를 얻게 되었다. 음성언어의 세계에서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최일권은 일찍이 다른 방식의 표현에 눈을 떴다. 8세가 되어 서울농아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그는 세계미술전에 입상했다. 13세에는 전국아동미술전에서 상을 받았다. 미술은 그에게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방식이자 삶의 목표가 되어갔다. 운보 김기창과의 만남, 화가의 길을 열다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과의 만남이었다. 김기창 화백은 최일권에게 오랜 세월 가르침을 주었고, 그를 통해 한국화의 정통성을 이어받도록 지도했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얻은 깊이와 절제를 자신의 작품에 담아냈다. 이른바 "제2의 운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최일권은 스승의 정신을 이어받으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붓끝으로 허문 경계세월이 흘러 2007년, 최일권은 대한민국 장애인대상을 수상했다. 50년이 넘는 창작 활동과 지속적인 전시 활동으로 장애예술인의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특히 2023년 이천아트홀에서 개최된 "한국화업 50주년 기념 전시"는 그의 반세기 예술 인생을 정리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하지만 최일권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붓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더욱 섬세해졌다. 음성언어라는 세상의 주류 소통 방식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사람이 비언어적 미술 언어로 전하는 메시지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깊은 침묵을 담고 있으면서도 가장 큰 울림을 전한다. 조용한 꽃, 다시 피다2026년 4월, 갤러리바다에서 "그대, 내게 날아와 꽃처럼 피소서"라는 제목의 전시를 개최한 최일권은 여전히 현역이다. 갤러리바다는 아트오브(ARTOVE)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장애예술인 상설 갤러리다. 이 공간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장애예술인들이 기업의 일원으로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플랫폼이다. 타이슨푸드코리아 소속 장애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일권은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2026년 4월 2일부터 4월 2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대, 내게 날아와 꽃처럼 피소서"—이것은 소리를 잃은 화가가 색채와 형태로 세상에 보내는 간절한 호출이자, 평생을 붓으로 살아온 화가의 영혼의 목소리다. 침묵의 미학, 그리고 새로운 시대최일권 화백의 인생은 장애를 극복했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시작점으로 삼아, 그것을 초월한 깊이 있는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림이 무언(無言)의 언어라면, 그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최일권의 활동이 단순히 개인적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장애와 예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의 존재 자체가 장애예술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아트오브와 같은 기업들이 장애예술인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도, 최일권과 같은 선배 예술인들의 삶이 밀고 나간 결과였다. "조용한 꽃이 피어난다"—이것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부제인 "In Quiet Bloom"이 전하는 메시지다. 소리 없이, 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고, 계절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처럼, 최일권 화백은 여전히 예술의 정원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