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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⑦-제7경기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2/15 [21:20]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⑦-제7경기

최봉혁 | 입력 : 2022/12/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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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⑦-제7경기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 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⑦-제7경기

 

 

제 7경기.

 

 대환은 맞은 편에 앉은 정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정은아, 너 동생 있다고 했지?”

 

 “응. 남동생.”

 

 “몇살 차이나?”

 

 “3살.”

 

 “그럼 아직 고등학생이겠네.”

 

 “응. 세상 무용한 쓸데라곤 하나도 없으면서 괜히 눈치까지 보게 만드는 게 고등학생인 남동생이야. 하나님은 쓸모없는 것은 만들지 않으신다는데 남동생이란 존재를 만들어내실 땐 긴장이 좀 풀리셨나?”

 

 악의없이 쏟아지는 정은의 농담 섞인 비난에 대환은 허허 웃었다. 정은의 그런 점이 좋았다. 대학교 조별과제를 통해 만난 정은은 털털하고 꾸밈없었다. 

 같이 공부하기로 해놓고 꺼낼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제 준희의 이야기를 듣고 여자인 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봐주마 약속을 했기에 대환은 눈치를 보며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근데 그 남동생이 말이야...”

 

 “뭔데? 설마, 내 동생이랑 아는 사이?”

 

 정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자, 대환은 속수무책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짐짓 꾹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저기 말이야. 남동생이 혹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중증 장애인이라고 상상해줄 수 있을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해.”

 

 갑작스런 대환의 말에 정은의 얼굴이 붉어졌다. 

 

 “장애인?”

 

 “실은...”

 

 대환은 그간의 사정을 정은에게 털어놓았다. 활동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만났지만 몇 년이나 관계를 지속해온 준희가 가족만큼이나 신경이 쓰인다는 말도 저절로 하게 되었다.

 

 “그럼 준희는 네가 없이는 외출하기가 어려운거네? 그런데도 직장 생활도 하고 대단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준희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 본 적 없는 것 같아.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 그래서 말이야. 너한테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실례인 줄 알지만 준희한테 대답을 해주고 싶어.”

 

 준희는 누나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자신을 만나고 싶은,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은 그 마음이 진심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꼭 한 번 누나를 만나고 싶은데 그것을 바라도 되는지 누군가 확신을 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정은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두 사람은 침묵한 채로 이따금 빨대로 커피를 마셨다. 빨대를 타고 올라가는 커피가 줄어들수록 대환은 점점 긴장하기 시작했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힘든 것이라면 그렇다면 준희 누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 동생은 정말 감기도 잘 안 걸릴 만큼 건강해서 상상하기가 힘들었어. 생각하니 그것도 얄밉다.”

 

 정은은 원래의 정은으로 돌아와 있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생이라도 내 동생인 건 변하지 않으니까 만약 나라면 만나 보고 싶고, 결혼식에도 초대하고 싶을 것 같아. 내 동생까지 합쳐서 나니까. 그건 어떻게 없애버리거나 지워버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정은은 잠시 뜸을 들였다 다시 말했다.

 

 “아버님이 잊고 잘 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게 살라는 말이잖아. 핵심은 잊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라는 거니까 동생이 있는게 더 행복하다면 만나도 되는 거 아닐까? 행복의 모습은 다 다르니까. 동생과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속으로부터 그분을 괴롭게 한다면 그 어떤 것으로 행복해지긴 어려울 것 같아.”

 

 대환은 준희에게 정은의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준희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준희 안에서 어떤 생각의 소용돌이가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선생님.”

 

 마침내 준희가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결혼식 말이에요. 서울에서 한 대요.”

 

 “서울? 누나가 서울에 살고 계셔?”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결혼식 장소가 서울이라는 것만 알아요. 제가 서울에 갈 수 있을까요?”

 

 준희의 물음에 대환이 깜짝 놀랐다.

 

 “서울?”

 

 “네. 저 혼자는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요. 선생님 혹시 저랑 같이 서울에 가주실 수 있으세요?”

 

 “준희 너 괜찮겠어?”

 

 대환의 물음에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먼 도시. 오랫동안 밖에 있어야 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괜찮을지는 모르겠어요.”

 

 준희는 약간 힘이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근데 선생님. 그때 야구 보러 갔을 때요.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었어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았어요.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 두근거림, 기억 같은 걸 더 간직하고 싶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해 보고 싶어요. 기왕 서울까지 가는 거니까 하룻밤 보내고 올래요.”

 

  기억을 간직한다는 말이 대환의 마음을 아프게 건드렸다. 간직한 채 어디론가 가버릴 것을 염두에 둔 말 같아서 애써 고개를 흔들며 그 말을 털어버린 대환은 무턱대고 싱글벙글 웃었다.

 

 “좋아. 도전하는 건 좋은 거야. 그래, 하자. 우리 같이 서울 여행에 도전해보자!”

 

  서울까지는 KTX를 타기로 했다. 결혼식 날 올라가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오는 걸로 결정하자, 준희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서울 가면 가보고 싶은 곳 없어?”

 

 준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대환이 질문을 던졌다.

 

 “그냥 사람들 많은 곳에 가보고 싶어요. 유명한 곳 있잖아요. 인사동 같은.”

 

 “인사동 좋지.”

 

 “저도 서울에 가보게 되네요.”

 

준희가 희미하게 웃었다. 대환은 그런 준희의 어깨를 짚으며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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