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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와 함께 쓰는 추억일기Ⅱ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기사입력 2022/11/23 [23:23]

유나와 함께 쓰는 추억일기Ⅱ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입력 : 2022/11/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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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과새벽 출판기념회 = 유나와 함께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유나와 함께 쓰는 추억일기Ⅱ 
                                       안 이문
유나야~! 어느덧 매미 소리 뚝 그치고,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이 함께 모여 여기저기서 합창 경쟁이 요란하구나.
지난해 추석날 저녁이었지. 그날 저녁 너와 함께 집 옥상에서 휘영청 둥근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는데, 지금 너는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그래도 오늘은 너하고 약속한 대로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함께 추억일기를 정리해보자.
 
2022.3. ×일 
유나가 초등학생이 되는 날
 
오늘은 유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그래서 집안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전화벨이 울리면 유나에게 축하한다는 전화다. 옛날에도 입학하는 날이면 입학하는 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들도 어린 자녀가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는 것을 가슴 뿌듯해하며, 학교까지 아이 손을 잡고 입학식에 함께 참석 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부모들을 비롯하여 함께 온 가족들은 별도로 문밖에서 입학식 광경을 봐야 하는 실정이고, 식이 끝나면 운동장으로 나와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가 하면, 한쪽에 마련된 "××학교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 합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포토 존에서 사진을 찍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 광경이 역시 축복받는 날임을 증명한다. 
사진 찍기가 끝나면 온 가족들이 대부분 중국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자장면으로 식사를 하는데 이런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다만, 보건당국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실내·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가 없는 것이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우리도 유나를 데리고 중국음식점으로 갔으나, 이미 대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유나가 좋아하는 한식집으로 발길을 돌려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다.
무엇보다도 유나는 아직 기분이 붕 떠서 여기저기 새로운 모습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유나야~ 지금 기분이 어때" 
"하삐(할아버지의 애칭)~ 유나도 이제 초등학생이잖아요. 하삐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기분이 어땠어요?"
유나는 내가 초등학교(국민학교)입학할 때의 기분을 역으로 물어온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64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입학식 광경이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진다. 그 당시는 국민학교였고, 나의 아버지 시대는 소학교라고 했으니까 그런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한 것 말고는 학생들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삐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까만 교복 차림에 손수건을 접어서 달고 다녔단다. 
유난히 코 흘리는 시기라서 손수건으로 코를 닦으라고 핀으로 매달고 다녔어.”
그리고 그때는 카메라가 귀한 시절이니 지금처럼 사진으로 추억을 담지는 못했고, 아마도 학교에서 준비한 사탕을 몇 개씩 받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하나씩 꺼내먹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은 거의 누구에게나 즐겁고 행복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2022.4. ×일
유나가 하삐에게
 
"하삐, 안녕"
"지금 뭐 해"
"유나는 엄마 심부름으로 편의점 가는 중“
 
문자가 와 있었는데 어젯밤에 보낸 것이다.
유나로부터 처음 문자를 받아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기쁘기도 하고, 바로 답장하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했다.
"유나야~ 어제 보낸 문자를 지금 확인해서 답장이 늦어졌구나. 미안해."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사주는 것은 아니다 싶어 유나에게 3학년이 되면 그때 사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나가 엄마나 아빠의 휴대전화를 쓰는데 요즘 들어 부쩍 전화기 사달라고 조르는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전화기를 쓰는데 왜 자기는 3학년 때까지 기다려야 하냐”면서 항의?를 한다니 무엇이 유나를 위해서 옳은지 분간이 안 된다.
 
그런데 며칠 후 유나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기존 쓰지 않는 기계에 칩을 새로 끼워 쓴다니 일거양득 아닌가 여겨진다. 그리고 내 카톡으로 유나가 전화번호를 보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은 대면 수업이 아닌 온라인 수업으로 하는 때도 있고, 새로 사귄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학원도 미술학원과 구몬학습 외에도 피아노, 태권도,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한다.
나는 유나가 학교 공부 외에도 이렇게 많은 학원에 다닌다는 것이 너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스스로 즐기면서 모두 잘 소화하고 있다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2022.5. ×일 
전시회 관람 후에 생긴 일화
 
유나가 유치원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고, 또 그림그리기를 좋아해서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다. 
나는 가끔 전시회가 있을 때면 유나를 전시장으로 오게 해서 관람하도록 안내해 준다.
그리고 관람이 끝나면 관람 소감을 얘기하도록 해서 느낌을 들어보고, 내 생각도 얘기해 주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다소 엉뚱한 말을 꺼낸다.
“하삐,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그렸잖아요. 이렇게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렇겠지, 유나야~ 어떤 일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어려운 과정들을 이겨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거란다.”
“유나도 어려운 시기가 있을 때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완성한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예, 하삐”
그래, 고맙구나
 
2022.6. ×일 
하삐~! 출판기념회 축하해요.
 
그동안 1년여에 걸쳐 3인이 공동집필 한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열다”의 책이 완성되고 출판기념회가 있는 날이다. 
궂은 날씨에 비까지 오락가락한다. 나는 가족 중에 유일하게 아들과 유나를 참석하게 하고, 다른 가족들은 알리지 않았다. 
시간이 되니 어느 순간 눈앞이 환해진다.
꽃다발을 들고 예쁜 유나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반갑고 예뻐서 와락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2022.7. ×일 
하삐 자랑
 
유나가 네이버 검색창에 하삐 이름을 검색해서 나온 기사와 이미지를 선생님께 보여드리면서 “이분이 우리 할아버지세요” 하고 자랑을 했단다.
학교 선생님이 그 기사를 찬찬히 읽어보고 “유나 할아버지가 훌륭하시고 멋진 분이시구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유나 어깨가 으쓱해졌다고 몸짓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하삐 사랑해요” 한다.
 
2022.8. ×일 
포켓몬을 잡아라.
 
"하삐~ 내일 하삐집에서 잘 거야~!"
"포켓몬이 새로운 캐릭터 스티커와 제품이 출시되는데 이것은 꼭 사야 해."
나는 이 아이의 언어 구사가 어른들 수준이라서 물어봤다.
“유나야, 출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하삐~! 제품을 팔려고 시장에 내놓는다는 거지"
그렇지, 정확히 아는데~
"그런데 그런 말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니?"
"유튜브" 대답은 간단했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유튜브로 하루를 마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다음날 유나는 아빠를 따라서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마자 “아빠는 이제 빨리 집으로 가서 쉬세요.” 그렇게 아빠를 집으로 가도록 강권하여 돌려보내고 내게 말한다.
"하삐, 오늘 저녁은 유나가 포켓몬 빵을 잘 구하기 위한 계획서를 만들 거야, 메모지하고 볼펜 좀 주세요."
나는 이 아이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포켓몬 빵(빵을 사면 스티커가 있는데 스티커의 종류가 150개 이상이고, 이미 130개 이상을 확보 한 상태다)을 구하기 위한 계획서를 세운다니~~ 그리고 메모지와 볼펜을 받아 든 유나는 뭔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간다. 살짝 들여 다 보니 ´저녁 8시에 출발해서 제일 먼저 GS25를 거쳐 다음 차례는 7 Eleven, 그다음은 CU를 차례로 돌고, 몇 시에 포켓몬 빵이 들어오는지 파악해서 그 시간에 맞춰서 포켓몬 빵을 산다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저녁 열한시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집에 들어가 쉬고 다시 나간다.'
결국 우리는 이날 만이천보 이상을 걷고 포켓몬 빵 5개를 구했다.
그런데 요즘 남녀노소 구분 없이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이렇게까지 열광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 유나에게 살짝 물어봤다.
"유나야, 포켓몬 빵을 사서 스티커를 모으면 그걸 뭐에 쓰는 거야?”
“하삐, 스티커를 뭐에 쓰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모으는 재미야. 그리고 나에게 같은 종류의 스티커가 여러 개 있을 때 다른 애들과 바꾸면서 친해지기도 하고, 포켓몬 뮤와  뮤츠를 만나면 대박이거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뒤 나는 포켓몬 빵과 포켓몬 관련 상품이 있으면 기웃거리며 사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목 유명마트 앞을 지나는데 길게 줄을 서서 뭔가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했더니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한 줄이었다. 
유나가 포켓몬 빵 스티커를 수집하는 노력에 덩달아 나도 맨 뒷줄에 붙어 서서 기다려 본다. 
약 2~30분은 기다린 것 같다. 내 차례가 되어 빵을 쓸어 담듯이 집어 드는데 점원이 3개로 제한되어 있어서 3개만 사야 한다고 한다. 뒤를 보니 역시 내가 기다렸던 만큼의 줄이 생겼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내 성격이 아무리 유명한 맛집이라 해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유나의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긴 줄에서 30분의 시간을 기다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포켓몬 빵 3개를 구해서 득의에 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유나의 카톡으로 보냈더니 역시 예상대로 반색하며,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감사 합니다."며 답장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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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켓몬 빵 3개를 구해서 득의에 찬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2022.9. ×일 
한가위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다.
 
지난해처럼 집 옥상에서 유나와 함께 달을 보고 소원을 빌지는 못했지만
각자 따로따로 소원을 빌기로 했으니 정숙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우리 유나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 주세요」
      
 
2022.9. ×일  
유나 소풍 가는 날 
 
오늘은 유나가 학교에서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소풍 가는 날이다.
아마도 도자기 마을로 가서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체험 행사도 있어 기대가 큰 모양이다.
거기에다 유나 엄마가 직장에 오전 반 차 휴가를 내고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줬으니 뛸 듯이 기뻐하더란다. 
나도 어린 시절 소풍 가는 전날 밤은 괜히 잠도 못 자고 소풍날을 기다렸던 생각이 아련히 떠오른다. 점심시간이면 평소에 먹지 못한 반찬들로 푸짐하게 준비해 주신 음식을 반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식사하는 즐거움, 또 보물찾기는 소풍의 단골 프로그램으로 가장 가슴 뛰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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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를 즐겁게해준 엄마표 도시락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유나를 더욱 즐겁게 해 준 엄마표 도시락(이 외에도 2종 세트가 더 있음)
                                                                               
<유나는 오늘 하루를 얼마나 즐겁게 보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시간이 되어 유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하삐~ 잘 다녀왔어요”
“오~유나야, 오늘 재미 있었니?”
“예~ 그런데 뙤약볕에서 너무 더웠어요.”
“오늘 날씨 시원하고 좋아서 소풍 간 유나 좋겠다고 했는데~! 그늘이 없었어?”
“그늘은 있었는데 도자기 체험 장소가 넘 더웠어요”
“아,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오늘 잘 쉬고 내일 통화하자.”                   
“예, 안녕히 주무세요.”  
 
결국 유나는 다음날 몸에 열도 나고 감기기운이 있어 병원엘 다녀와야 했다는 
연락을 받고 마음이 아려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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