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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③- 제3경기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1/23 [23:36]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③- 제3경기

최봉혁 | 입력 : 2022/11/2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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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③- 제3경기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③- 제3경기 
 
매치포인트
 
김보미
 
 
제 3경기.
 
 대환은 준희의 아파트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오르고 나서야 활동 보조 취소 문자를 받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렇게 당일에 취소한 적이 없는 준희라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장애인 활동 보조 일을 하기 위해 훈련을 받을 때, 될 수 있으면 먼저 연락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활동 보조 시간을 사용하고 돈을 내야 하는 사용자인 장애인의 입장이 곤란할 수도 있으니 어떤 이유에서든 취소 사유를 먼저 묻지 말라고 안내를 받았다.
 
대환은 준희가 계속 마음에 걸렸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신 뜻밖에 생긴 여유 시간을 그간 상상만 해오던 일에 쓰기로 했다. 준희와 함께 야구장에 가기 위해 미리 답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던 길에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이 미어터지게 많았던 적이 있었다. 늘 같은 시간, 비슷한 이용객이 있던 지하철은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새로 지은 야구장 때문이었다. 야구 경기도 경기지만 그에 맞는 행사를 하다 보니 볼거리도 많고, 가족끼리 가기 좋다고 소문이 났다. 그래서 야구장 정문과 바로 통하는 지하철 역이 심하게 붐빈 것이다. 
 
덕분에 발이 묶인 전동휠체어는 공간이 충분히 생길 때까지 지하철 역사 구석에서 대기해야 했다. 그런데도 준희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준희는 야구 경기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사람들이 내는 소란한 소리, 행복한 표정, 응원 도구와 유니폼 같은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도 좋다고 했다.
 
그날 준희의 들뜬 표정은 대환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통증으로 남았다. 야구 경기도 아니고 야구 경기를 보고 온 사람들만 봐도 좋다니. 준희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준희에게 같이 야구를 보러 가자고 제안하기 전에 준희가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지 상황을 알아보기로 한 대환은 야구장으로 출발했다. 준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길이 전동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곳인지 꼼꼼하게 살폈다. 
 
야구장에 들어선 대환은 전동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경사로를 살피다가 계단에 설치된 리프트를 발견했다. 건물을 지을 때 필수사항이라 리프트를 설치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직원에게 작동 여부를 물었다. 
 
건물 외관 담당 직원이 다시 리프트 담당 직원을 부를 때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리프트가 실제로 작동을 하는 것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작동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을 만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미리 답사하지 않고 준희를 데려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동인구가 많은 계단 입구에서 꼼짝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갇혀 있어야 했을 것이다. 대환은 손바닥을 들어 마른 세수를 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종종 갇혀 있어야 했던 준희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리프트 작동 여부와 담당 직원 연락처까지 챙긴 대환이 학교로 향할 무렵, 준희는 집에서 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회사에 연차를 내고, 활동 보조 선생님인 대환과의 약속도 취소해버렸다. 삼촌도 상황이 심각해보였는지 돌아가지 않고 준희 곁에 앉았다. 
  
 “무슨 일로 회사도 안 가고 이러는거냐? 회사 출근하는 것도 약속이야. 이러면 신용이 없어진다.”
 
 아버지의 무뚝뚝한 꾸지람에도 준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첫 마디를 뭐라고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준희의 마음속에 질문들이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아버지.”
 
 “왜?”
 
 “엄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알고 싶어요. 며칠 전 통화 엄마에 대해 말씀하신 거 우리 엄마 맞죠?”
 
 “무슨 소리냐? 엄마라니. 네 엄만 너 낳고 죽었어. 얘기 할 것도 없다. 그게 다야.”
 
 “아버지 그날부터 오는 전화 전부를 안 받으시잖아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전화통화 한 사람은 누구예요? 누구랑 엄마 이야기를 하신 건지 말씀해주세요”
 
 준희의 질문에도 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다. 답답한 침묵을 깬 건 삼촌이었다.
 “언제까지 비밀일줄 알았수? 형님, 이야기 해줘요. 준희는 얼마나 궁금하겠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넌 그만 돌아가. 준희 너도 네 방으로 들어가라.”
 
 아버지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셨다. 준희는 휠체어 방향을 돌려 삼촌과 마주했다.
 
 “꼭 알고 싶으냐?”
 
 “삼촌. 엄마가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요.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뭐라도 좋아요. 엄마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래서 저도 엄마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막 하고 싶어요. 엄마가 그리운데 뭘 그리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긴 분이세요? 사진도 한 장 없나요? 궁금해 죽겠어요”
 
 준희가 눈물을 흘리며 간곡하게 말하자, 삼촌은 벌떡 일어나 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삼촌이 들고나온 건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에는 어떤 여인과 어린 여자아이가 쑥쓰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네 엄마와...누나다.”
 
 “누...누나요?”
 
 준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모습을 보는구나 싶었는데 삼촌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준희의 상상을 한참 뛰어 넘는 것이었다. 
 
 “저한테 누나가 있었어요? 근데 왜 한 번도 말씀해주지 않으셨어요? 누나는 어디 있어요? 설마 누나도...죽었나요?”
 
 삼촌은 망설이다가 준희에게 누나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렸다. 
 
 “네 누나는 살아있다. 잘 살아. 나도 본 지는 꽤 되었다만 가끔 소식이 오는 걸 들어보면 큰 문제 없다는구나. 대학교도 졸업하고, 어디 취직도 하고. 남들 사는 것처럼 산다고 하더라. 하긴 그러려고 떠났으니 그렇게 살아야지.”
 
 준희는 애가 타는지 속이 타는지 모를 갈증을 느꼈다. 준희의 손가락 방향을 보던 삼촌이 물컵에 빨대를 꽂아 휠체어에 고정시켰다. 허겁지겁 물을 들이키는 준희를 보며 삼촌이 말을 이었다.
 
 “네가 태어나고 네 아버지도 곧 다니던 공장에서 잘리고 말았어. 공장에서 
 3교대로 일을 할 때 알았어. 아버지 심장이 선천적으로 기형이라는 것을. 타고난 장애가 있었지. 아버지 치료는커녕 너를 돌볼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네 어머니와 누나까지 네 식구가 꼼짝없이 굶어 죽을 판이었어.”
 
 삼촌도 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네 어머니 친정에서 그러더구나. 어머니하고 누나만 온다면 받아주겠다고. 거기서 다 같이 죽지 말고 아버지와 헤어지고 누나만 데리고 오라고. 그러면 네 치료비도 얼마간 지원하겠다고 말이야. 네 아버지가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그때는 너를 병원에 데려갈 엄두도 내지 못할 형편이라 다른 방법이 없었지.”
 
 그렇게 엄마와 누나는 원래부터 준희 삶에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양쪽 집안이 합의를 봤다고 했다. 중간중간 엄마가 연락이 와도 아버지는 모질게 준희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고 했다. 생각하고 그리워하면 가슴만 아프다고. 차라리 낳을 때 잘못되었다고 여기라고 끊어낸 사람은 아버지니까 어머니 원망은 말라고 삼촌은 덧붙였다. 
 
 “네 어머니도 그렇지만 누나도 크고 나서는 네 걱정이 마를 날이 없었어. 몇 년 전,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진희한테 여러 번 연락이 왔었다. 참, 네 누나 이름이 진희야. 김진희.”
 
 누나는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준희를 만나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졸랐다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꼬박꼬박 돈도 보내왔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더는 준희의 삶에 혼란을 주지 말라고, 없는 줄 알고 살게 내버려 두라고 무참하게 누나의 청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시지 않았다. 삼촌 혼자 준희를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준희는 새벽까지 어머니와 누나의 얼굴을 번갈아 떠올리고, 전혀 기억에 없는 그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날 준희는 죽지 않았다. 악몽을 꿀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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