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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⑧-제8경기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2/15 [21:21]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⑧-제8경기

최봉혁 | 입력 : 2022/12/15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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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봉혁기자의 사진여행 =함박눈   © 장애인인식개선신문

 

(장애인 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김보미 매치포인트 - (산문, 뇌병변, 중편소설 ⑧-제8경기

 

 

제 8경기.

 

 준희의 서울행에 가장 큰 난관이 남아 있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진희의 존재를 잊고 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준희는 이런 상황을 해결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주어지는 하루를 감당하며 살았을 뿐이었다.

 도전을 결정하는 것.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뛰어든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준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준희는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려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 의견과 반대로 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준희의 마음은 충분히 힘들었다. 이제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희는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다. 호출벨이 울리자, 아버지는 무거운 얼굴로 준희의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진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아직 내용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아버지의 얼굴은 지쳐있었다. 준희는 그 순간이 괴로웠다. 차라리 아버지가 아무 말도 말라고 하면 마음이 편안할 지도 몰랐다.

 

 “뭔데?”

 

 아버지는 준희의 입을 막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준희가 말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늘 그랬다. 기저귀를 채우는 것이 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준희가 화장실에 갈 수 있게 하셨다. 

 아버지의 결정은 준희를 사랑하는 쪽이었다. 아버지 당신이 편하기 위해 내린 결정은 없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누나의 결혼식을 보러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준희는 말하고 말았다.

 

 “누나 결혼식에 가고 싶어요.”

 

 의외로 아버지는 놀라지 않았다. 평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너희가 남매는 틀림없이 남매구나. 진희도 그렇게 너를 데리고 결혼식에 오라고 하던데. 너도 그 이야기냐?”

 

 “절대 누나한테 말을 걸거나 아는 척 안 해요. 그냥 보기만요. 보기만 할게요. 뒤에서 살짝요. 누나가 결혼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이번이 아니면 누나를 몰래 볼 다른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보고만 올게요. 서울 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잠깐 아주 잠깐만요.”

 

 누나가 궁금하다고 생각은 했으나 막상 말을 꺼내놓고 보니 한층 더 간절해졌다. 자꾸만 누나 생각이 났다. 준희의 삶에 생각보다 큰 그림자가 된 것이다. 

 

 “서울까지는 어떻게 갈 셈이냐?”

 

 뜻밖에도 아버지는 계획을 물었다. 준희는 대환과 함께 세운 서울 여행계획을 상세하게 털어놓았다. 

 

 “정말 조심할게요. 절대 무리 안 하고요.”

 

 준희는 들뜬 마음을 숨기려고 노력하며 묻지도 않은 약속을 했다.

 

 “사진 한 장 찍어오너라.”

 

  아버지의 괴로운 한숨 소리가 짧은 문장 사이로 새어 나왔다. 준희에게는 누나였지만 아버지에게는 딸이었다. 20년을 헤어져 살면서 동생 얼굴 한 번 보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딸아이에게 전화하지 말라고 윽박만 지르는 아버지로 살았다. 

 준희의 결심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만큼 강력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다른 도시에 가본 적 없는 아이, 혼자서는 가벼운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아이가 누나의 결혼식을 보기 위해, 그것도 몰래 잠깐 보고 싶어 서울까지 간다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균열이 아버지의 진심을 드러냈다. 

 

 “저 그리고 아버지.”

 

 준희가 다시 입을 열자, 아버지가 말없이 준희를 응시했다.

 

 “저 부탁이 하나 더 있어요. 사진만 가지고 있으니까 사진의 모습 말고는 아무 기억도 안 떠오르는 게 더 선명하게 느껴져요. 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엄마나 누나에 대한 이야기요. 딱 하나만요. 어떤 사람들인지 기억하고 싶어서 그래요.”

 

 아버지는 어딘가 모를 곳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너희 엄마는 늘 바빴다. 남들은 그냥 하는 것도 꼭 어른 먹을 것, 진희 먹을 것을 따로 만드는 사람이었지. 집에서 돈가스를 직접 만들었는데 진희도 아주 좋아했어. 밀가루 풀풀 날리며 냉동해 놓을 돈가스를 만들곤 했다. 그런 사람이었어.”

 

 잠시 뜸을 들인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진희는”

 

 아버지는 진희의 이름을 부르고는 한참 말이 없었다.

 

 “진희는 너를 좋아했어. 저도 아기면서 신생아인 너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곤 했다. 그 작은 등에 너를 업게 해달라고 매일 조르곤 했지. 네가 자면 우리 보고 조용히 하라고 단속하는 것도 진희였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가느다란 물기가 어리었다. 준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했지만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준희도 익히 아는 그리움이기 때문이었다.

 

 “너 서울 간다며?”

 

 저녁 무렵, 삼촌이 준희를 씻기며 말을 걸었다.

 

 “너희 아버지도 참 고집이다. 진희 말처럼 아버지가 너 데리고 가서 결혼식 보면 좋을 텐데. 너는 너대로 혼자 가서 몰래 보고 온다 그러고 진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속상할 거고.”

 

 “누나한테 그게 더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게 맞잖아요.”

 

 준희는 슬그머니 아버지 편을 들었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면 준희도 혼란스러웠다. 조금만 빨랐으면 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결정이 옳지 못하다거나, 아버지 인생 전체에 걸친 헌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냥 속상하다는 말이야.”

 

 삼촌은 준희의 머리카락을 괜히 벅벅 문질렀다. 샤워가 끝난 후, 삼촌이 준희의 짐을 챙겼다. 병원에 입원할 때나 짐가방을 챙겼지 여행 가방은 삼촌도 처음이었다.

 

 “비상약 챙겨야겠지? 소화제 같은 것도 좀 챙기고? 너 긴장할 수도 있잖아. 형님, 우리 소화제 있수?”

 

 결국, 아버지까지 거실로 나왔다. 아버지는 엉거주춤 장식장 앞에 앉아 삼촌이 부르는 약이 있는지 손을 더듬었다. 삼촌은 휴대용 온열기 먼지를 털어 여행 가방 한쪽에 넣었다.

 

 “핫팩 챙겨도 잘 때는 어떨지 모르니까 온열기 챙겨보자.”

 

 “괜찮아요, 삼촌.”

 

 “괜찮기는 이 녀석아. 너 그렇게 멀리 간 적 없잖아.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야지.”

 

 삼촌은 아버지가 내미는 약을 넘겨받으며 섭취할 수 있는지 날짜를 확인했다.

 

 “오, 지사제까지 종류별로 다 있네. 약은 이걸로 충분하겠다. 근데 이상하네. 짐 싸니까 벌써 여행 기분 난다.”

 

 항상 지나친 적막하던 준희의 집이 떠들썩해졌다. 삼촌의 넉살에 준희는 흐흐 웃었다. 무거운 마음, 지나친 걱정, 뾰족한 불안 같은 것들이 잠시 흩어졌다. 준희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처럼 잠깐 찾아온 평화로운 순간을 음미했다. 짧은 평범함에 기대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깊은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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