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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④ 모래시계

최봉혁 | 기사입력 2022/11/08 [01:31]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④ 모래시계

최봉혁 | 입력 : 2022/11/08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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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인식개선신문) = 장예총[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④ 모래시계     ©

(장애인인식개선신문=최봉혁기자)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수상작 연재] 대상  김민주 - ④ 모래시계

 

어제 통화했던 한상인 기자입니다 , 거기서 뵙겠습니다.”

지구대학교의 교문은 두 개의 아치형 문으로 이루어졌고, 그 문 사이로 큰 통행로가 나 있었다. 오랜만에 대학이란 곳을 찾는다는 생각에 약간은 설레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구 대학 캠퍼스의 낯선 풍경이 나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 풍경은 낯설다 못해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오래된 벽돌건물에 담쟁이넝쿨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 캠퍼스라면 어디든 공유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구대학교 캠퍼스는 차라리 기업체 단지에 가까웠다. 거대 기업의 이름을 딴 xx, yy, zz센터가 점령군처럼 공간을 강탈하여 점유하고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오는 대신 낙하산을 타고 학교 어딘가에 뚝 떨어졌더라면, 아마 이곳을 대학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무슨 상관일까. 기업이 대학에 지분을 가지든 말든 오늘 다뤄야 할 주제는 그게 아닌데……. 잡념을 품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나는 자주 눈살을 찌푸렸다. 지구대학교에 찾아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 위해 한 번, 미팅했던 여학생을 만나기 위해 한 번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랑 낮술을 마시던 작은 동산을 찾아 두리번거렸으나 온데간데없었다. 그 동산은 소박한 왕릉의 크기밖에 안 될 정도로 아담했지만 숲이 우거져 몸을 가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는 샹송 글로벌 리더십 센터라는, 도무지 이름의 뜻을 종잡을 수 없는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하여 흙바닥을 구르던 그 신입생 때의 객기도, 낭만적인 취기도 술에서 깨고 난 후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흙냄새를 맡으며 바라보던 하늘에는 콘크리트 지붕에 얹혀 있었다. 샹송 글로벌 리더십 센터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자주 미간을 구기며 인상을 찡그렸다.

도서관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은 샹송호()를 닮은 점이 많았다. 역시 총장은 샹송 회장처럼 꽃과 자연을 사랑하였는데, 크지 않은 연못임에도 잉어와 붕어를 가득 풀어놓아 못 속은 생명력으로 버글거렸다. 나는 연못을 바라보며 고등학교 때의 그 자습실을 떠올렸다.

도서관 역시 샹송빌딩을 본뜬 듯 닮아 있었다. 이것저것 고민하기보다는 다만 실용성과 권위를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 듯했다. 잡다한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도서관 건물에 교육철학을 투영한 효율적인 표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배를 끊어야지.”

여학생이 나오길 기다리며 지루함을 담배로 달랬다. 담배를 물고 있으면서도 끊을 것을 결심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먹고 있으면서도 먹지 말아야지, 놀고 있으면서 공부해야지 하는 말처럼 현재의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잡념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산만한 사람들은 살고 있으면서도 죽어야지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종종 내뱉는다.

도서관 출입문이 수줍게 열리더니 한 여학생이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그녀는 파란색 플레어스커트를 입고서 하이힐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왔다. 도서관 안에서의 저런 복장은 담배를 피면서 금연을 생각하는 나처럼 어색해 보였다.

혹시?”

, 제가 한상인 기자입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그녀는 긴 생머리를 뒤로 한 번 넘기더니 웃으면서 내게 인사했다. 여자들은 왜 쭈뼛할 때마다 머리를 뒤로 넘기거나 혹은 입을 가리거나 코를 만지작거리는 것일까. 이것은 거리에서 마주쳐 걸어오는 여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다가 내가 지나친 후에야 다시 고개를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나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다. 어찌됐든 난 그녀의 수줍음이 싫지 않았다.

어제 말씀드린 책 여기 있습니다.”

나는 ‘7급 국사라는 두꺼운 책을 그녀에게 건넸다. 한 손으로 들기엔 좀 버거운 무게였기에, 손이 떨리기 전에 냉큼 넘겨줘야 했다. 그녀는 책을 요리조리 살피더니 눈썹을 모았다. 자살한 청년을 호수에서 꺼내야 했기에 책 속의 필기는 모조리 번져 있었던 것이다.

내 책이 맞긴 한데. 그런데 이 책이 어째서 기자님한테 있는 거죠? 이건 석민 오빠가 어제 아침에 빌려갔던 건데. 오늘 돌려준다고 했거든요. 안 그래도 도서관에 나오질 않아서 연락을 해봤는데 전화도 받지 않더라고요. 혹시 석민 오빠랑 아는 분이세요?”

여학생은 기자가 이리도 한가할 수 있냐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분의 성함이 석민이군요.”

? 서로 아는 사이 아니세요?”

, 그분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부장이 아니고서야 기승전결 혹은 육하원칙을 갖추어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의 죽음이라는 결론부터 말하고서,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덤으로 덧붙여주었다. 여학생은 도무지 믿을 수 없어 하는 표정을 짓고는 한동안 멍하게 연못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세요?”

.”

나는 김 형사가 내게 그리했듯 다소 사무적인 말투로 대꾸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내가 전달하는 부음을 불신하는 눈치였다. 그녀는 몇 번이나 더 정말이냐고 따지듯 물었다. 여학생이 되묻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녀는 불필요하게도 석민 학생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봤다. 통화연결음이 1분 간 지속됐다. 그 점이 그녀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죽은 이의 핸드폰 배터리도 곧 주인을 따라가겠지.

여학생은 길게 침묵하더니 정말이냐고 세 번이나 더 물어보았다. 나는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했다.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만약 이 여학생이라면, 혹시 석민 학생의 죽음에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반추해볼 것이다. 누군가가 죽기를 결심할 때 그의 머릿속에 자신이 떠오르는 것만큼 마음에 걸리는 일도 없을 테니. 하지만 여학생의 생각을 내가 알 턱이 없다. 그녀는 다만 오랫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부족한데 말이다.

어째서죠?”

정말이냐는 물음 대신 다른 걸 물어줘서 다행이었다.

석민 오빠가 정말 자살을 결심했었다면, 왜 굳이 내 책을 빌려갔던 것일까요? 왜 하필 내 책을…….”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는 자신이 석민 학생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가 그녀의 진심어린 슬픔을 의심하도록 만들진 않았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찾아온 겁니다. 혹시 유리알 씨는 석민 학생이 왜 자살을 하게 됐는지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의 심경을 주변에 알리는 법이거든요. 그가 평소와는 달리 우울해 보이진 않던가요?”

그녀는 아랫입술을 찡긋 깨물어보더니 입을 뗐다.

그런 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그 오빠는 작년에 공무원 시험에 붙었거든요. 그래서 다들 오빠를 부러워했었어요. 졸업 후에 바로 들어갈 직장이 마련돼 있었으니까요. 요즘 같은 때엔 공무원만 한 직장도 없잖아요.”

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고, 또 이미 붙었었다니! 나는 새로운 퍼즐을 끼워 맞춰 보았다. 어쩐지 유서가 발견되지 않더라니. 만약 김 형사의 결론이 틀렸다면? 그는 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면? 그와 평소 원한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그를 처참히 지워버린 채 샹송빌딩 옥상에서 밀쳐버린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희대의 살인마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아니다. 김 형사의 말이 옳다. cctv 속의 인물은 석민 학생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살아서 혼자 옥상까지 올라갔고, 죽어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다른 이는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죽었단 말인가? 그것도 몰골을 처참히 훼손해가면서까지 말이다. 역시 자살이긴 하다. 그는 어쩌면 그저 특이한 인간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나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은가. 마감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기사를 작성하려면 새로운 추측은 접어야 했다. 창작이라면 모를까. 창작은 추측과 달리 증명이 필요치 않으니까.

그는 온통 지워져 있었습니다.”

지워져 있다니. 내가 생각해낸 표현치곤 참 기발하군! 난 잠시 흡족해졌다. 아마 그녀는 지우개로 무언가를 쓱싹쓱싹 지우는 영상을 머릿속에 재생하고 있으리라.

지워져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여학생은 나와의 대화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핵심부터 말할 걸 그랬다. 괜히 시간만 끌었군.

석민 학생은 애석하게도 얼굴과 지문이 염산 범벅으로 된 채 발견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을 텐데요. 그리고 죽어버릴 작정이었으면서 왜 유리알 씨 책을 빌려갔는지……. 왜 하필 그 높은 데서 뛰어내렸는지…….”

? 석민 오빠가 투신자살을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또다시 라고만 답하기엔 대화가 단조로운 듯했다. 나는 석민 학생이 샹송빌딩 옥상에서 번지 점프하듯 뛰어내렸고, 호수로 추락했기에 국사책이 젖어 있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는 모두 친하게 지냈었는데. 그런데.”

여학생은 말꼬리를 흐렸다. 흐린 말꼬리를 줄줄 뽑아내면 기사가 보다 풍성해질 때가 종종 있다.

석민 오빠는 규원 오빠와 하메였거든요.”

하메라뇨?”

하우스 메이트요. 둘이 같이 살았었어요. 요즘 다 그렇게 살잖아요. 월세가 비싸서.”

, 석민 학생은 형편이 어려웠나 보군요.”

아뇨, 그 반대예요. 오빠는 늘 풍족했어요. 집에서 매달 150만 원씩 생활비를 탔거든요.”

150만 원! 인턴 기자인 나의 월급보다 많다.

그런데 왜 규원이라는 분과 같이 살았었나요?”

이런 대화가 부디 기사에 도움이 되기를.

규원 오빠는 집에서 돈을 받지 못했어요. 밤샘 알바에 생동성 피실험 알바까지 하고서도 옥탑방 신세를 면치 못했거든요. 학자금 대출 받은 것만 해도 벌써. 그래서 석민 오빠가 같이 살아준 거였어요. 공과금만 내라는 조건으로요. 덕분에 규원 오빠는 월세를 내지 않고 살았고, 생동성 실험실에서 34일 동안 금연하지 않아도 됐어요.”

석민 학생은 마음씨가 좋은 분이군요. 그런데 그렇게 유복하고 착한 분이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을까요? 혹시 유리알 씨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대화가 길어져도 진척은 없었다. 말이 몇 번 오가다가도 결국 그는 왜 자살했나, 라는 원점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부모님과는 별 문제가 없는 듯했어요. 공무원 시험에 붙어뒀는데 마음의 짐이랄 게 있었겠어요? 석민 오빠는 팔자 좋은 사람처럼 학교를 빈둥거렸어요. 우리처럼 알바를 할 필요도, 더 이상 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말년병장이라고 하나요? 꼭 그런 것처럼 생활이 참 지루해 보였어요. 우리가 놀아줄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퍽 침울해 보이기도 했고요.”

공무원 시험에 붙었으면서 왜 유리알 씨의 교재를 빌려갔을까요?”

오빠는 9급 공무원에 응시했었어요. 뭐 그런 게 아니겠어요? 9급부터 붙여놓고 심리적 안정을 찾은 후에 7급 공무원을 준비하려고 하는. 제 책을 빌려달라기에 그런 줄 알고 줬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아침에 그런 생각을 품었던 사람이 정오에 자살을 했다?”

유리알은 대화 도중에 틈틈이 커피를 홀짝홀짝 마셔둔 덕분에 이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전 이제 밥 먹고 알바 가야 해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줍게 인사했다. 뭔가 빠진 게 있는 듯 찜찜한데도 그녀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시간에 쫓겼다. 알바시간은 30, 시험은 72일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몇 발자국을 가는가 싶더니 잊고 있던 걸 마침내 상기하여 내게 물었다.

오빠 장례식장이 어딘지 혹시 아세요?”

 

유리알과의 대화에서 꽤 소득이 컸었다. 그녀는 자살한 학생의 이름과 그의 경제적인 상황 그리고 석민 학생과 늘 함께 어울렸다는 두 사람을 추천해주었다. 조금 놀란 점은, 석민 학생의 나이가 나랑 동갑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20대로 머물겠군. 서른을 반 년 앞두고 죽었으니까.

부유층 공무원, 샹송빌딩 자살테러!이 정도 제목이라면 적당할까? 제목은 내용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일수록 좋다. 클릭한 후에 너도 기자냐?’라고 비난성 댓글이 달린다 한들 무슨 상관일까. 그들은 이미 광고를 다 보았을 텐데. 그러니 난 조금 과장할 수밖에 없다. 석민 학생을 부자 공무원으로, 단순 자살을 테러 수준의 자살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그 정도의 끔찍한 광경을 시민들에게 보였으니 심리적 테러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고시에 합격했더라면 고위공무원이라는 더 매력적인 단어를 택할 수 있을 텐데!

자살이라는 흔해빠진 단어는 배제했다. ‘국회의원 선거라는 검색어는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 5,000등 밖이었다.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인데도 말이다. 국민임대주택은 간신히 4,000등 안에 들었다. 임대아파트와 최저임금은 그것보다 조금 높았다. 하지만 같은 해에 자살이란 검색어 순위는 1,500등이었다. 성인 15.6%가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3.3%는 자살을 계획하고, 3.2%는 실제로 시도한다. 그만큼 우리는 자살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죽음이 있다. 고개를 돌리면 저승사자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5

이규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석민 학생과 같이 산다는 점에서 꼭 만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질 않은가. 다행히 김영강이라는 사람은 도서관에 있었다.

여보세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목소리인지 입김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희미한 소리였다.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하기엔 그의 자리가 열람실 출입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듯하다. 학생은 도서관 깊숙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른 아침부터 자리를 맡았을 그는 공무원이 될 자질이 확실히 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김영강입니다.”

나는 유리알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김영강에게 들려주었다. 이번엔 그냥 염산 얘기부터 했다. 그는 유리알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서, 비슷한 시간의 침묵을 보이더니 동일한 질문을 내게 해왔다.

그 형이 왜 죽은 겁니까? 그리고 왜 하필 유리알의 책을 빌려갔던 것이죠?”

그는 슬퍼 보였지만 평정을 잃지 않았다.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은 사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여 요점을 간추렸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건 저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알아가고 있다는 말에 그는 유리알보다 더 긴요한 정보를 주었다.

그 형은 조금 이상했어요.”

나는 학생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는 내가 자기와 같은 담배를 피운다는 점을 신기해했다.

그 형이 사실 공부를 꽤 잘했던 것 같아요.”

그의 말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졌다. 나는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를 쉽게 칭찬하는 경우를 본 적이 드물다. 남자는 놀 때조차 경쟁을 하려 들지 않는가. 운동장에서 온몸으로 싸우는 이 전투적 집단 속의 나는 얼마나 많은 긴장감을 느껴야 했던가. 운동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의학은 인간의 몸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생활은 이해하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죽으면 참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죽으면 쉽게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간은 몽땅 죽은 자들이군. 그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희처럼 학교를 휴학하지도 않은 채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을 단 한 번에 붙었거든요. 그러면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곤 했으니까요. 그 형에겐 장학금 따윈 필요가 없었지만. 그 형 정도의 머리라면 고시 공부도 해봄직 했을 텐데, 웬일인지 형은 9급 공무원에 응시했어요. , 일생일대의 모험보다는 비교적 쉽고 안정적인 것을 택하는 전략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전부 혹은 전무라는 식으로 도전하기엔 너무 위험한 세상 같아요.”

김영강은 석민 학생의 작은 업적들에 대해 삭감 없이 털어놓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석민 학생보다 두 살 어리다는 점을 말할 때에는 목소리에 힘을 꾹 주었다.

그런데 석민 학생이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그는 이번에는 자신의 담배를 꺼내 물고선 대답했다.

그 형은 저보다 두 살 많지만 동기생이에요. 그러니까 석민 형은 삼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온 것이죠. 자신이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성적이 잘 나오는 걸 보면 머리가 나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는데, 삼수씩이나 해서 고작 이 학교에 온 게 참 이상했어요. 너도 참 지질이도 공부 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우리학교도 인(in)서울 중상위권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게 이상하다는 말입니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그 형은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친구가 없었어요. 별명이 띠껍다였거든요.”

띠껍다?”

, 띠껍다. 뭐든지 띠꺼운 표정을 지었거든요. 엠티를 가자고 해도 띠꺼워 하고, 축구를 하자고 해도 띠꺼운 표정을 짓고, 심지어 우리 과 애들 모두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서 월드컵 응원 갈 때도 형은 흰색 티셔츠를 입고서 띠껍게 우리를 쳐다봤으니까요. 그러니 친구가 있을 리 있나요. 그냥 잘난 체하길 좋아하는 형인가보다 했었죠. 과 동기들이랑 노는 대신 만날 컴퓨터만 하던걸요. 혼자 노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긴 하죠.”

역시 석민 학생은 부적응자였던 것인가. 그런 그가 자살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자살 사이트 같은 데나 기웃거렸겠지.

그렇군요. 좀 이상한 사람이군요.”

아뇨, 형은 그다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군대를 갔다 오더니아니, 공익이었지! 아무튼 복학하더니 형은 좀 적극적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우리와도 곧잘 놀고, 엠티든 오티든 가끔 참석도 했어요. 자기 성격을 고칠 필요를 느꼈었나 봐요. 형이 우리와 잘 어울릴수록 얼굴에 있던 그늘이 점차 사라졌어요. 휴학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늘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그런 게 좀 많이 없어진 거죠.”

그렇군요. 그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군요. 남들보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군요.”

아뇨, 형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김영강이 날 상대로 장난을 걸어오나 싶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또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그러나 내 목소리는 여전히 단조로웠다.

형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서부터 시간을 거슬러 1학년 때로 돌아간 듯했어요. 그는 가끔씩, 꼭 왔던 길을 되밟기라도 하듯 저 연못가의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어요. 사우나에 가면 모래시계 있잖아요. 모래가 한쪽으로 다 떨어지면 다시 뒤집어줘야 하잖아요. 형이 꼭 그랬어요. 1학년 때, 복학 후,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모두 다른 사람 같았어요. 모래가 다 떨어지면 시계가 뒤집히듯 말이죠. 이따금씩 우리가 몰래 가서 등을 탁 치면 형은 미친 듯이 화를 내곤 했어요. 그게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었나요? 하지만 우린 같은 처지였고,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를 이해해줬어요. 나보다 두 살이나 많은 사람인만큼 시험에 대한 압박감도 더 컸겠죠.”

그렇군요. 그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겠군요. 하지만 수험생의 스트레스는 합격과 동시에 증발하는 게 아니던가요? 그는 왜 자살을 택한 것일까요?”

그야 저도 모르죠.”

…….”

아무리 생각해도 형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작년에 시험을 치던 날이었어요. 국가직 공무원 시험은 당일에 바로 채점을 해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형은 좀처럼 채점을 하려고 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제가 더 궁금해져서 형 시험 점수를 매겨봤어요. 합격하고도 남을 만한 점수더라고요.”

그는 기뻤겠군요.”

아뇨, 그랬다면 형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죠. 형은 뭔가 맥이 탁 풀린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 있었어요. 저는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하지만 계속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더라고요.”

뭐라고 하던가요?”

그건 기억이 나지 않네요.”

…….”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우리 셋은 시험에 떨어져서 죽을 노릇이었는데. 원래 잘난 체를 좀 하는 사람인 건 알았지만, 여유를 부려도 너무 부리는 것 같더라고요. 요즘 세상에 9급이 어딘데!”

이런 식으로 우리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유리알과 얘기할 때처럼 몇 차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서도 여전히 원점에서 맴돌아야 했다. 도대체 그는 왜 자살을 했을까? 그것도 잘못 쓰인 글자처럼 자신을 쓱싹쓱싹 지워버린 채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열패와 낙오자의 대열 속에서 자기를 발견할 때 스스로를 부정하곤 한다. 세상은 또렷한데, 자신은 희미해져가는 느낌! 이 느낌이야말로 멀쩡한 사람도 산송장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석민 학생은 작은 승리를 거둔 날 이후로 서서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러고선 급기야 완전히 사그라진 것일까.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김영강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찍어 보내더니 책을 챙겼다. 그는 시험이 코앞이라고 했다.

유리알과 김영강은 모래시계에 갇힌 모래알 같았다. 모래알은 자신을 가둬둔 세계가 존재하는 한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다. 저들은 저들을 저들이게끔 하는 세계 속에서 뒤집히고, 다시 또 거꾸로 선다.

삶이란 저마다의 모래시계에 갇혀 각자의 중력에 속박되는 것일까. 다음 시험, 다시 다음 시험, 또 다음 시험…….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는 말은 정규직 발표가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고 번역되어 나를 긴장시켰다. 나는 중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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